칠곡홍화씨 잡지소개자료
칠곡토종홍화농장은 농림부 선정 신지식농업인장1호가 운영하는 농장입니다.
2000년 2월호샘이깊은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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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02-28
작성자 : 칠곡홍화
조회 : 8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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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깊은물
"사이버 농사꾼"으로 사는 재미 나는 땅을 일구며 사는 농부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땀 흘려 씨를 뿌리고 수확물을 거두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내가 여느 농부들과 다른 게 있다면 "컴퓨터"란 놈을 끼고 산다는 것이다. 밭에 나가 일을 할 때를 빼면 나머지 시간은 줄곧 컴퓨터에 매달려 살고 있다. 컴퓨터로 날아든 주문을 확인하고 농장 소식을 만들어 통신으로 띄우면서 하루 해를 보낸다. 컴퓨터가 없으면 아예 농장을 꾸려 가지도 못할 정도이다. 그 탓에 "사이버 농부"라는 꽤나 거창한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약용 작물 홍화의 가능성을 점치고 나머지 삶을 송두리째 건다는 각오로 들어선 농부의 길. 그 길의 성패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것이 "무엇을 심느냐"였고 내가 승부수로 잡은 것이 바로 홍화였다. 한의학 책인「신약 본초」를 뒤적이다가 "홍화는 꽃과 씨가 ***을 다스리는 데 **이며,**** 및 *** **에게 최고"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까지 홍화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마치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 가는 뭔가를 느꼈고, 홍화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엉겅퀴처럼 생긴 국화과의 한해살이 식물인 홍화는, 그씨앗에 *를 굳게 하는 백금 성분이 많이 들어 있고 ** ***** 수치를 떨어뜨리는 불포화지방산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다. 확실한 **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천구백구십사년 당시만 해도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뒤 홍화에 관한 기록이 있는 책은 모두 찾아 읽었고, 실제로 홍화를 재배하고 있는 농가를 찾아가 현장 실습을 하고 오기도 했다. 얼마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천구백구십오년 봄 고향 마을 칠천몇 평의 밭에 홍화씨를 뿌렸다. "칠곡토종홍화농장"이라는 팻말도 내걸었다. -중략- 시장 개척은 전자 상거래로 그러나 홍화 생산보다 더 큰 문제는 "판로 개척"이었다. 좋은 홍화를 생산만 한다고 해서 바로 돈이 되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이땅의 농부들이 모두 겪는 어려움이기도 할 것이다. 홍화 납품을 위해 한약상으로 경동시장으로 뛰어다닌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판로 개척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값싼 중국산 홍화가 수입되어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토종 홍화가 좋다는 것은 약재를 취급하는 곳에서 더 잘 알고 있었지만, 번번이 가격 경쟁에서 밀려 날 때가 많았다. 아마 그런 식의 불투명한 판로에 의지해 살았다면 우리 농장은 벌써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판로 문제를 고민하다가 우연치 않게 컴퓨터 통신을 이용해 물건을 팔고 사는"전자 상거래"를 알게 되었다. 정보화 사회로 가는 필수 관문이자 미래 쇼핑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사이버 쇼핑 문화"가 막 문을 열던 때였다. 요즈음이야 인터넷 쇼핑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고, 살 수 있는 품목도 다양하지만 천구백구십육년 당시 만 해도 유명 백화점이나 몇몇 공산품에만 시범으로 운영되는 수준이었다. 그 첨단의 유통망 속에 농산물이 얼굴을 내민 다는 것은 자칫 비웃음을 살 만한 일이기도 했다. -중략- "신지식인" 일 호로 뽑히다 천구백구십팔년 우리 농장의 매출액은 일억 삼천만 윈이고, 지난해에는 사억 오천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올해는 십오억원쯤으로 목표를 잡고 있고 무난하게 이룰 것이라고 본다. 그 사이에 홍화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홍화를 재배하는 농가도 많이 늘어났다. 그런 가운데서도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농장 홍화의 품질이 좋다는 말이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칠천몇 평으로 시작한 농장은 규모가 많이 커져서, 지금은 계약 재배를 하는 곳까지 합치면 십만 평쯤 되는 토종 홍화를 생산하고 있다. 농산물을 나라 안에서는 처음으로 전자 상거래를 통해 판매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게 되자 농림수산부에서는 지난 천구백구십팔년 "신지식인"이라는 이름을 달아 주었다. 변화의 물결을 따라잡지 못해 어려운 농업 분야에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 희망을 주었다 해서 준 상인 셈이다. 해마다 여러 부문에서 "신지식 농업인"을 발표하고, 그 일 호로 뽑힌 것은 나로서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더 많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데서 적잖은 책임을 느끼기도 한다. -중략- 충분히 첨단화될 수 있는 농업 사실 내가 신지식인이 된 것은, 아주 특별난 일을 했다기보다는 우리 농업이 그만큼 변화에 둔감한 채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내 작은 행동이 눈에 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도전 의식"이니 "개척 정신"이니 하는 말로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보는데, 새롭게 접어든 길에서 절박하게 뮌가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실직의 아픈 경험이 나로 하여금 여러 가능성으로 고개를 돌리게 만든 것 같다.이런 것을 "전화 위복"이라고 하던가? 우리의 농업이 처한 현실도 당시 나의 경우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변해 가고 농업은 계속 뒤처지고만 있는 데 대해 진정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필사적인 각오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략- "전자 상거래"가 농촌의 살길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았던 여러 까닭 가운데서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 농민들이 너무 유통에 대해 몰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간 상인들만 키워 온 농산물의 유통 구조 때문에 정작 힘들여 일해 온 농민은 소득이 적고 상인들만 잇속을 챙기는 웃지 못할 현실을 만든 것이다. 이런 모순을 바로잡는 길이, 바로 산지의 농민과 도시의 소비자가 손을 잡는 직거래이며, 그 직거래의 현대적 방법이 전자 상거래인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자기 농장의 농산물을 소개하고 농민과 소비자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농산물을 사고 판다면 중간 상인 때문에 부풀려진 유통 비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농민에게도 소비자에게도 경제적인 득이 될 것이다. 앞으로 전자 상거래는 유통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을 것이다. 우리 농업이 그 흐름을 잘 소화해 직거래를 활성화한다면 농민들도 지금처럼 어렵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중략- 농촌의 정보화 운동에 발 벗고 새 천년에 이루고 싶은 나의 바람은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농촌의 정보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다음 달쯤이면 그 동안 농림부로부터 신지식 농업인으로 뽑힌 칠십팔 명의 전국 농민들이 모여 "전국신지식농업인회"를 결성할 계획이다. 우리 농촌도 깨치고 일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의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힘을 기르는 데 발 벗고 나서기 위해서이다. 또 하나의 꿈은 해외로 우리 토종 홍화를 팔아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다. 컴퓨터 통신이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세상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금 우리 농장은 년 사만 달러 정도의 수출고를 올리고 있다. 인터넷으로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으니 수출길이 더욱 활짝 열릴 것이다. 대한민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내가 생산한 홍화를 전세계인들이 먹게 된다는 것,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 즐거움을 우직하게 일만 해 온 이땅의 모든 농민들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샘이깊은물 이천년 이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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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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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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